반갑습니다. 서울대학교 김상훈입니다. 제가 쓴 책을 들고 오신 분이 많으셔서 꼭 저자와의 대화를 하는 기분이네요.
더 진정성 있는 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공통된 고민을 하고 계시더군요. ‘소비자 마음 얻기가 점점 어려워져요’, ‘더 이상 마케팅이 안 먹힙니다’와 같은 고민들이죠.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 고민을 해결해줄 ‘진정성 마케팅(Authentic Marketing)’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까 합니다.

브랜드 화형식(火刑式)의 시대
‘진정성과 마케팅이 어울릴 수 있나요?’ 여러분 중 한 분이 사전에 질문해 주신 내용입니다. 진정성과 마케팅, 이 두 말이 상충한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하지만 저는 모순어법이 아니라 동어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은 진정성 없이 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창업하신 분들을 많이 만나는데, 그들 눈빛은 확신으로 이글거립니다. ‘이 제품 너무 좋아요!’라는 확신이죠. 이게 마케팅의 대전제입니다. 마케팅의 필요조건은 훌륭한 제품이고, 여기서 마케팅이 시작됩니다. 진정성과 마케팅은 같은 말이죠.
최근에는 진정성이 특히 중요해졌어요. 브랜드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들이 많아졌거든요. 영국의 닐 부어맨이라는 분은 브랜드와 인격을 결부시키는 독특한 방식으로 인기를 끈 인플루언서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폭탄선언을 하죠. “그동안 얘기한 것은 잊어주세요. 브랜드가 자아를 확장시킨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브랜드만 남고 내 정체성은 사라졌어요.” 그는 브랜드와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명품 브랜드를 광장으로 가져가 불태웠습니다. 브랜드 화형식(火刑式)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요. 나오미 클레인이라는 분도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NO LOGO>를 통해 ‘과연 명품 로고가 우리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노 로고’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품질 같은 내재적 가치 이외의 것은 다 없애자는 운동입니다. 마케팅 입장에서 보면 정말 충격적인 뉴스죠. 이제 새로운 마케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소셜 미디어가 가져온 변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가장 큰 변수는 소셜 미디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등장 후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지요. 과거의 소비자는 TV나 잡지 광고에서 얻은 정보만으로 상품을 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걸러진 정보, 회사가 전하고 싶은 정보만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정보가 다 검색으로 드러나고, 공유됩니다. 숨길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서 소비자 힘이 세졌고, 모르는 게 없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었습니다. 이 제품이 진실한 건지, 진정성이 있는지도 쉽게 알아차리죠.
우리가 마케팅을 잘하면 소비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LG 마케팅 참 잘하는구나. LG 제품 많이 사야지!’라고 할까요? 아닙니다. 요즘은 마케팅 잘하는 것과 구매가 별개 문제입니다. 좋은 광고를 보면 소셜에 올리고, 편의점에 가서는 1+1 제품을 삽니다. 현장 마케팅에 영향을 받지, 광고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할까요? 마케팅 같지 않은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진짜’라고 느껴지는 것을 전달해야 하고,이것이 진정성 마케팅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깐깐해진 소비자들
소비자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최근 <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던데, 제가 학교에서 만나는
2000년생들은 더합니다. 주관이 굉장히 뚜렷하고, 불만을 숨기지 않아요.
소비자들의 광고 반응을 살펴보면 요즘 소비자가 깐깐해졌다는 걸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신규 분양 아파트 광고에서 모델이 ‘이 아파트 살기 좋다’고 말하면, 소비자들은 ‘진짜 그 아파트에 사냐?’고 따집니다. 제약사 광고 모델에게 ‘진짜 그 약 사용하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이런 광고가 나왔죠. ‘래미안에서 72시간 살아보기’. 과거 래미안은 ‘프라이드’를 강조했는데, 이 광고에는 그런게 전혀 없고 그냥 사는 모습만 인증샷처럼 보여줍니다. ‘래미안에 산 지 8시간이 됐어요… 33시간 됐습니다…’ 그러고는 끝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인터넷에 있습니다’라는 얘기와 함께. 광고의 기능은 이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정보는 인터넷에 다 있잖아요.
‘콜롬비아 커피’라고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으시죠? 커피를 수확해 나귀에 실어 장에 내다판다는 광고에 나왔던 후안 발데스. 미국 네티즌들은 그가 콜롬비아 농부가 아니라 미국 배우임을 밝혀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콜롬비아 커피’ 매출은 급감하였죠.
소비자는 더 이상 과도한 마케팅과 허위 광고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검색과 정보공유 기술의 발달로 정보 불균형이사라졌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진정성 마케팅에 선행되어야 할 세 가지
써브웨이 샌드위치 중에는 ‘풋롱(Footlong)’이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발 길이만큼 길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고, 1피트 길이를 의미한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고객이 줄자로 크기를 재봤더니 1피트에서 1인치가 부족했던 겁니다. 그 사진을 SNS에 올리자, 난리가 났습니다. 회사는‘풋롱’이 단지 브랜드 이름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소비자들은 분노했고, 소송까지 가게 됐어요. 해명이나 진심 어린 사과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고객들을 진정시키려면 이제 확실한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성 마케팅이라는 패러다임이 새롭게 대두되었습니다. 진정성 마케팅은 세 가지를 꼭 지켜야 하는데 우선앞서 보신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진실을 이야기하라’입니다.
두 번째는 ‘우선 지키고, 그 다음 약속하라’죠. 약속도 하지 않은 것을 기업이 스스로 지키면 소비자들은 이를 반드시 찾아냅니다. 요즘 마케팅은 우리가 고객에게 하는 B2C가 아니라, 고객이 고객에게 전하는 C2C입니다. 고객들이 서로 이야기하도록 우리는 말할 거리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

세번째는 ‘Don’t Over Sell’. 너무 과도한 목표보다는 적정한목표를 세우는 게 낫습니다. 과도한 목표를 이루려고 하면 사고가 터지고, 리스크로 돌아옵니다.

진심을 느끼게 하는 유형들
최근 광고를 보면 ‘진심’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소비자는 그게 마케팅이라는 걸 다 압니다. 진정성 마케팅은 진심이라는 말을 쓰는 게 아니라, 진심을 느끼게끔 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 브랜드에서 진심을 느끼는지 분석해 아홉 가지로 정리했고, 여러분이 가져오신 책으로 엮었습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설명해 드리죠.
첫 번째는 탄생 스토리와 헤리티지가 있을 때입니다. ‘키엘(Kiehls)’ 매장에 가보면 직원들이 다 약국 가운을 입고 근무합니다. 왜냐? ‘키엘’은 1851년 미국 뉴욕의 동네 약국에서 시작한 브랜드거든요. 컨셉이 아니라 탄생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진심이 느껴집니다. 또 헤밍웨이, 고흐, 피카소가 즐겨 사용한 ‘몰스킨(Moleskine)’ 노트, 윈스턴 처칠이 사랑한 샴페인 ‘폴 로저(Pol Roser)’ 등은 인물이나 시대와의 연관성을 강조한 스토리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철학이 있는 브랜드입니다. 나이키(Nike) 광고를 잘 보시면 백인 남성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종, 성별, 나이, 장애, 건강, 빈부 등을 초월하자는 ‘Just Do It’ 광고, 평등과 기회의 메시지를 담은 ‘Equality(평등) 캠페인’은 나이키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최근에도 나이키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미국 프로 풋볼 선수를 모델로 기용하였습니다.
브랜드의 철학과 나의 철학이 일치하게 될 때 우리는 그 브랜드에 호감을 느낍니다. 브랜드가 진심을 전하고, 칭송을 받으려면 그래서 철학이 꼭 필요합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 마케팅
세 번째는 겸손하고 정직한 브랜드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듯 브랜드도 그렇습니다. ‘로우로우(RAWROW)’라는 브랜드는 ‘막 쓰는 가방’이라는 겸손함을 앞세워 성공을 거뒀고, ‘마마이트(Marmite)’라는 잼은 겸손하다 못해 ‘우리는 이런 게 문제’라고 자아비판을 합니다. 이잼의 장점은 비타민이 듬뿍 들어가 있다는 건데, 그래서 냄새가 좀 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제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광고까지 하였습니다. ‘버켄스탁(Birkenstock)’도 ‘우리 애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광고합니다. 왜 못생겼을까요? 예쁘게 만들면 발이 불편해진다고 설명하지요. 이들 브랜드는 약점을 인정하는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신뢰도를 높이고, 유머 감각을 결합시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하였습니다. 고객 클레임도 나오지 않겠네요.
네 번째는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능과 품질을 가진 브랜드입니다. LG전자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좋은 예가 되
겠습니다. LG전자는 진동 없는 세탁기를 마케팅하기 위해 작동 중인 세탁기 위에서 카드를 높이 쌓아 기네스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 무선 청소기의 강력한 흡입력을 알리려고 청소기 흡입력을 이용해 33층 빌딩에 오르는 영상을 제작해 화제를 모았었지요. 소비자들의 마인드 쉐어가 높아지면 마켓쉐어를 바꿀 수 있습니다.

결국 브랜드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
브랜드가 사랑받으려면 또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제품의 성능과 기능에서 멈추면 안 되고, 사회 구성원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친환경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역설적인 광고로 유명한데요, ‘제품 만들 때마다 환경이 파괴되니 불필요한 옷이면 사지 마라’, ‘1년 더 입어라’라고 충고합니다. 상술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파타고니아는 등산장비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걸 알게 된 프로 등반가가 자연보호에 대한 책임감으로 설립한 회사입니다.
환경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만들던 기업이나 브랜드가 만약 어려움에 처한다면 소비자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당연
히 응원하지 않겠습니까? ‘진정성이 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 저는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진정성 마케팅은 우리 브랜드를 사람으로 만드는거고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브랜드도 그렇습니다. 좋은 철학을 가진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뛰어난 제품력으로 사랑받는 브랜드도 있고,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담당하시는 브랜드와 제품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우선 좋은 제품인지 냉철히 따져보셔야 해요. 그런 다음 계산된 진정성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그 아이들의 캐릭터가 어떤 건지 유심히 살피셔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든 매력을 한 브랜드가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가장 근사치에 있는 장점들을 찾아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작업을 하셔야겠죠. 진정성 마케팅은 결국 ‘순수한 마음으로 진짜가 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겠네요.
진정성 있는 브랜드와 제품이 많아질 때, LG생활건강은 더욱더 훌륭한 회사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