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ongwol

아름다운 유배지, 청령포
매표소를 지나 코너를 돌면 폭이 그리 넓지 않은 하천에 떠 있는 배 두 척이 보인다. 유턴도 할 수 없어 보이는 그 배는 느릿느릿, 하지만 부지런히 쉬지 않고 손님을 실어 나른다. 조선 시대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는 지금이야 배를 타고 쉽게 오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 강물을 앞에 두고 마음의 거리가 수십 년은 더 멀어졌을 것이다. 강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어디도 갈 수 없이 갇혀버린 어린 단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왕이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에 맞춰 방문하자. 고즈넉한 공간에서 맛깔스러운 역사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슬픈 역사의 현장인데도, 계절의 아름다움이 너무 빼어나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였다.

소원을 빌어요, 장릉
강원도 영월에 부임하는 주요 인사, 공무원들이 꼭 한 번씩 방문한다는 단종의 왕릉, 장릉.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반드시 들어준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부러 찾았다. 청령포에서 차로 5분 거리다. 소원을 빌러 찾았는데, 자태 고운 나무와 아기자기한 숲에 반했다. 산책하듯 둘러보기에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하나 더, 장릉을 돌아본 다음 바로 옆 보리밥 전문점에 들러 식사를 할 것. 장릉 매표소 직원분의 추천이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하다고?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번화가, 어디를 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카페, 브랜드 대리점이 늘어선 길가, 오리 백숙과 한정식을 파는 교외 식당들. 이렇듯 목적지를 잠시 착각할 정도로 닮은 지방 소도시의 멋을 알아채고 나름 즐길 거리를 찾아내는 일은 철저히 여행자의 몫이다. 차를 타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평소보다 천천히 걷고, 적당히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1박 2일을 보냈다. 차창 밖으로 가을의 낮과 겨울의 밤이 겹쳤다. 강원도 영월과 충북 단양의 유명 관광지는 이름값을 했고, 관광지와 관광지 사이 길가에서 만난 풍경은 시간 제약 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평일 오후에도 타지에서 몰려온 관광객을 적잖이 마주쳤지만 서울 도심의
북적거림과 비할 바 못 되었다. 같은 장소에서 모두 같은 마음으로 계절의 변화를 만끽했다. 국내 여행 경험이 적은 사람도 강원도는 특히 걱정할 필요 없다. 영월, 정선, 속초 등 도시별로 관광 콘텐츠 개발이 무척 잘되어 있으니까. 단양은 패러글라이딩과 짚와이어 등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레저 스포츠를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 올 동안 즐길 수 있는 코스를 알차게 다녔으니 여행 계획을 짤 때 참고하길. 가장 좋은 계절에 다녀온 기록이지만 겨울의 한중간에 떠나도 나름 맛이 있을 것이다.

한반도 지형 선암 마을
예능 프로그램에도 등장하고, 사진으로 한 번쯤 봤을 법한 한반도 지형 선암 마을. 강이 흐르면서 경사가 급한 면은 깎이고, 완만한 쪽은 퇴적물이 쌓이며 지금의 한반도 지형이 생성됐다. 사진과 똑같지만, 실제로 보면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가까이 산다면 계절마다 한 번씩 찾아서 꽃피고 단풍 들고 눈 쌓인 한반도의 사계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리겠다. 다만 주차장에서 20분 정도 가볍게 산행을 해야 만날 수 있다.

영월 서부시장
영월의 맛집을 검색하면 대부분 서부 시장의 닭강정과 메밀 전병이 나온다. 닭강정은 평타를 치지만, 김치와 양념으로 무친 채소를 넣고 구운 메밀 전병은 전국에서 택배로 주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 자리에서 바로 구워 먹는
맛이 묘하게 중독적이다.

영월의 하이라이트, 별마로 천문대
자동차를 타고 간다 해도 굽이굽이 올라가는 산길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월을 찾는다면 반드시 가야 할 곳으로 추천하고 싶고, 이왕 갈 것이라면 해가 지고 난 이후 찾기를 권한다. 매 시간마다 별 관측을 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공기 좋은 강원도 밤하늘을 천체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즐거움은 기대 이상이었다. 1차로 사계절 별자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천문대 옥상에 올라 4대의 망원경으로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다. 깜깜한 밤하늘, 유독 빛나는 별에 이름을 붙여보면 어떨까, 유치한 듯 들려도 꽤 낭만적이다. 별마로 천문대를 다녀온 후 지금까지 보지 못한 별을 더 많이 찾아보고 싶어졌다.

의외의 한 방, 동강 사진 박물관
올해 16년째 이어져 오는 ‘동강 국제사진제’의 중심에 있는 곳으로, 방문 당시 194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서울 풍경을 포착한 소장품 전시 <한국을 바라본 시선>이 열리고 있었다. 이해선, 김한용, 한영수, 홍순태 등 사진작가의 눈이 포착한 서울 곳곳은 한 장면도 허투루 보고 넘길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아름답고, 애틋했다. 잔뜩 멋 부린 명동의 멋쟁이 아가씨들, 손님을 기다리는 거리의 사진사, 힙스터들이 모여들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당인리 발전소의 옛 모습, 전후에 해외 패션 매거진을 파는 노점상,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남대문 주변 거리 등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다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사진이 낯설고 귀하던 시절에 남긴 작품을 보면서, 현재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일상의 순간도 과연 30년 뒤 이와 같은 평가를 받을 것인가 문득 궁금해졌다. 기념품으로 주는 엽서가 없다 하더라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박물관이었다.

숲속 헌책방 ‘새한서점’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해 ‘모히또’만큼 유명해진 새한서점. 어떻게 이 정도 규모의 책이 이 시골에 모여 있는지 놀랍다. 마치 도서관처럼 장르별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돼 있다. 마음에 드는 책, 읽고 싶었던 책을 발견한다면 그야말로 운명이니 기꺼이 지갑을 열자.

Danyang

아찔하게, 짜릿하게 만천하 스카이워크
관광지에 멋없이 들어선 구조물을 싫어하는 이들이라 해도 만천하 스카이워크는 한 번쯤 가볼 만하다. 힘겹게 등산하지 않고도 산 정상에 오른 것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빙글빙글 데크를 따라 걸었을 뿐인데 어느새 맞은편 산꼭대기와 나란히 서 있다. 남한강 수면을 기준으로 80~90미터 지점에 25미터 높이로 세워져, 정상에 도착하면 100여 미터 발 아래로 단양과 인근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너무 높아 아찔하면서 미니어처 마을을 구경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만약 단양 곳곳에서 체험 가능한 패러 글라이딩이 무섭다면 만천하 스카이워크에서 짚와이어를 경험해보는 것도 한 방법(입장료 포함 성인 1인 3만원) 와이어로프를 타고 창공을 미끄러지는데 1코스 50초, 2코스 30초 정도 소요돼 순식간에 주차장에 도착한다. 출발 직전의 두려움만 넘긴다면 처음 경험하는 짜릿함을 맛볼 것이다. 바람을 가르며 사방을 둘러보기 바쁘고, 의외로 시간을 짧디짧다.

두고두고 떠오를 밥 한 그릇, ‘쌍다리 휴게소 기사식당’
단양 시내로 향하던 길, 우연히 붉고 큰 글씨로 쓴 간판 ‘밥 잘하는 집’을 발견하고 차를 돌렸다. 꼭 먹고 가야 한다는 직감이 스쳤고 결과적으로 ‘쌍다리 휴게소 기사식당’은 자신감과 밥맛과 간판의 크기가 비례하는 맛집이었다. 파 송송 썰어 넣은 달걀 프라이의 디테일, 직접 가꾼 보드라운 상추, 서너 종류가 넘는 제철 나물, 깔끔하고 구수한 청국장과 감칠맛 좋은 제육볶음, 매콤달콤한 양념에 먹고 또 먹게 되는 더덕구이까지, 지금 생각해도 군침 도는 밥상이다. 단양 특산물이라는 마늘도, 아로니아도 싫은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없을 듯.

카페산
차를 차고 찾아가는 수월하지 않기에 운전자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막상 카페에 도착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올라오는 동안의 어려움을 잊게 된다. 서울 마망가또의 케이크를 공수하고 빈브라더스의 원두를 사용한 커피의 맛 또한 방문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패러글라이딩도 가능하니 코스를 짜서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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