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회사 긴자 스테파니(Ginza Stefany Inc., 이하 GSI)가 순풍을 타고 있다. 실적은 턴어라운드해 방향을 잡았고, ‘이자녹스’ 쿠션 파운데이션이 촉매가 돼 다른 제품으로 연쇄반응을 시작했다. 생활용품도 오럴케어 브랜드 ‘리치’ 사업 전개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 소식, 일본이 돌아왔다.

 

#1. 일본이 외국 기업의 무덤인 이유
일본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많다. 경제대국, 장인정신, 황금의 30년과 잃어버린 20년… 개중에는 조금 섬뜩한 ‘외국 기업의 무덤’이라는 수식어도 있다. GSI의 활약상을 살펴보기 전에 왜 일본이 외국 기업의 무덤으로 불리는지 짚고 갈 필요가 있겠다. 이는 일본 시장의 특수성이다.먼저 품질에 대한 일본 국민의 높은 눈높이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1960년대 이후 ‘황금의 30년’과 버블을 거치며 전 세계의 명품들을 왕성하게 소비한 사람들이다. 장기불황 탓에 지금은 싼 제품을 선호하게 되었지만, 제품을 고르는 까다로운 눈은 여전하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일본 내수 기업들은 뼈를 깎는 원가절감을 거듭해 ‘저렴하면서도 높은 품질’의 제품을 구현하였다. 현존하는 일본 기업들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엄청난 가격 파괴와 불황의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아주 강한 기업들이다. 어지간한 외국 기업들은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복잡하고 폐쇄적인 유통 구조도 외국 기업에게 걸림돌이다. 일본에서는 제조업체와 소매점이 직거래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대개 ‘돈야(問屋)’라고 부르는 벤더를 통해 유통이 이루어진다. 우리회사의 의지가 소매점이나 고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어려운 구조다.
일본 게이오 대학 나쓰노 다케시(夏野剛) 교수는 내수 시장과 독자 시스템에 집착하는 자국 IT기업을 ‘잘라파고스(Jalapagos: Japan과 Galapagos의 합성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이 말을 역으로 생각하면 일본의 시장 특성과 그곳에서의 생존법이 보인다.
일본 시장은 지난 50년간 환경 변화에 맞춰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서식하는 고유의 생태계다. 따라서 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지 않은 틈새시장이나 신 시장을 파고들어야 한다. 아니면 생태계를 바꿀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든가. GSI가 지금 그 일을 차근차근 해내고 있다.

#2. 쿠션 파운데이션, 돌풍을 일으키다
흔히 우리는 일본 국민을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틀린 생각이다. 일본인들은 그저 최고의 제품을 선호할 뿐이다. 공교롭게도 일본 기업이 만든 제품 중 세계 최고가 많아 결과적으로 이런 오해를 낳았다. 소니, 샤프, 후지쯔 등 내로라하는 전자회사를 보유한 전자대국이지만,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의 50%를 가져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명품과 함께 ‘진짜(本物; 혼모노)’를 지향한다. 명확한 콘셉트에 입각한 대체 불가능한 혁신 제품에 그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현재 일본에서는 한국 토종 기술로 만든 쿠션 파운데이션이 높은 제품력과 혁신성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사업지원부문 사종범 파트장은 쿠션의 인기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올 상반기까지 GSI의 쿠션 매출은 60억 원 정도 됩니다. 또 일본의 한 홈쇼핑방송에 론칭한 ‘이자녹스’ 쿠션은 쿠션 판매 1위고, 최근 방송에서도 일매출 약 17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GSI와 Everlife는 자체 화장품 브랜드에 쿠션을 추가해 순조로운 성장을 시작했습니다.”
쿠션의 선풍적인 인기 배경에는 현재 일본 트렌드인 ‘시간단축(時短)’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쿠션 하나만 발라도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 선크림을 모두 바른 효과가 나기 때문에 화장이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지난해 <일본경제신문>은 ‘올해의 히트제품’으로 쿠션을 선정할 정도로 쿠션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뜨겁다.
물론 경쟁 상대는 점점 느는 추세다. 최근 샤넬이 쿠션 파운데이션을 출시했고, 일본 시세이도도 8월 쿠션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쿠션 기술과 노하우에 있어서 ‘진짜’가 과연 누군지 말이다.
1992년 설립된 GSI는 일본에서 전화 권유 판매 방식 영업(아웃바운드)을 시작한 1세대 회사다. 컨세르쥬(Concierge)라고 부르는 전화 상담원들은 25년간 축적한 노하우와 진정성을 바탕으로 뛰어난 카운셀링 능력을 갖추고 있다. 25년 동안 GSI 화장품을 사용한 정기고객이 있을 정도로 GSI의 화장품 품질과 컨세르쥬의 휴먼 스
킬은 뛰어나다. 신규 고객만 원활히 확보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업 베이스.우리회사는 GSI의 장점 강화를 위해 2014년, 일본 서플리먼트 통신판매 회사인 R&Y를 인수해 GSI에 흡수시켰다. R&Y는 TV홈쇼핑과 인바운드 영업을 통해 고객을 모집하던 통신판매 회사. 박성원 법인장은 R&Y의 TV홈쇼핑업체와의 오랜 신뢰관계가 GSI 사업 변화에 물꼬를 텄다고 평가했다.

#3. GSI 성장의 기폭제가 된 TV홈쇼핑
“일본 TV홈쇼핑 시장은 QVC재팬과 쥬피터샵채널이 주도합니다. 두 홈쇼핑은 선택받은 극히 일부 제품만 플레이할 수 있는제한된 채널입니다. R&Y는 14년 전부터 QVC에서 피부미용 제품인 ‘플라센타 100’을 판매 중인데, 이 제품이 QVC 건강기능식품 중 판매 1위입니다. 재구매 고객도 80%에 달해 QVC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지요.”
2015년 ‘이자녹스’ 쿠션의 홈쇼핑 진출도 QVC와의 돈독한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GSI는 이 기회를 ‘이자녹스’ 브랜드와 GSI 사업 확장의 계기로 삼았다.
“일본 홈쇼핑은 메인 제품 방송 때 패밀리 제품도 같이 소개하라고 짧은 코너를 줍니다. 여기서 반응이 좋았던 제품은 추후 메인 제품으로 승격되지요. ‘이자녹스’ 쿠션의 패밀리 제품으로 소개한 ‘크리스탈 W 올인원크림’, ‘쥬엘 에센스 립스틱’이 현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기대가 큽니다.”
GSI는 또 TV홈쇼핑 쿠션 구매고객에게 통신판매용 기초 화장품 샘플을, 기존 통신판매 고객에게는 쿠션 체험 기회를 제공해 신규고객 확보와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4. ‘리치’와 ‘FiJi’로 새 길을 열다
우리회사는 작년 11월 존슨앤존슨의 오럴케어 브랜드 ‘리치’의 아시아·오세아니아 사업권을 인수하였다. 글로벌 브랜드 ‘리치’를 통해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 기존 오럴케어 시장에서 위상을 강화하고, 신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다. 특히 ‘리치’는 일본에서 치실 점유율 53%로 1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회사는 ‘리치’ 인수와 함께 GSI에 전담 조직을 구성했다. 전담 조직은 현재 치실과 칫솔 위주인 ‘리치’의 제품군에 치약과 치간 브러시 등을 확장해 ‘리치’를 ‘오럴케어 전문 브랜드’로 육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 생활용품 판매 업체인 TJI(Toiletry Japan Inc.)도 인수했다. TJI는 그간 우리회사 생활용품 독점 대리점으로 기능하며, 우리회사와 현지 유통사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곳이다.
우리회사는 TJI를 GSI의 자회사로 편입시켜 현지 시장에 보다 발 빠르게 대응할 채비를 마쳤다.
‘리치’와 TJI 사업을 담당하는 GSI 강대원 팀장은 지난 7월, ‘리치’ 및 TJI 영업사원들과 함께 일본 전역을 종횡무진하였다. 2월과 7월 열리는 ‘돈야 전시회’에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생활용품 시장은 3월과 9월에 신제품을 집중적으로 쏟아냅니다. 9월 전개할 제품들이 7월에 열리는 전시회에서 소개되지요. 전시회에는 전국의 소매점 바이어, 도매상, 중간 도매상 등이 모두 참여해 신제품 수용 여부를 결정합니다.”
‘리치’와 TJI는 카테고리가 다르지만 유통망이 동일하다. 따라서 이 둘은 이번 전시회에서 상호 간의 비즈니스 확대를 위해 활발하게 정보를 교류하며 제품 홍보 활동에 집중했다. 강대원 팀장은 7월 전시회에서 고무적인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리치’ 신제품인 교체형 치실과 ‘FiJi’의 시트형 세제가 크게 주목받았기 때문이다.“우리회사는 그간 일본 기업과 똑같은 제품으로 경쟁했어요. 가격, 품질, 인지도 어느 것 하나 그들을 따라잡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를 겁니다. 일본에 없는 독특한 신제품이 마련되었으니까요. 우리 제품이 지금보다 더 차별화된다면 일본 시장에서 더 큰 길이 열릴 겁니다.”

#5. GSI, 일본 사업의 플랫폼
2012년 GSI를 인수할 당시 우려가 없지 않았다. 통신판매는 우리가 해본 적 없는 사업 영역이라 겁이 났고, 일본 시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존재했다. 우려는 한류 거품이 꺼지면서 한층 고조되었다. 하지만 우리회사는 Ever l ife(2013년)와 R&Y(2014년)를 차례로 인수하며 오히려 일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냈다. 돌이켜 보니 그때의 판단이 옳았다. 박성원 법인장은 ‘현지 유통의 진입장벽을 감안할 경우 고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회사여야만 했다’고 강조하였다.
“일본 화장품 판매 채널 다수가 현지 유통이라는 진입장벽을 넘어야만 들어갈 수 있어요.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드럭스토어에 운 좋게 진입했다고 해도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지 않으면 셀프피킹 환경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컨세르쥬를 통해 고객과 1:1로 만나는 통신판매가 가장 좋은 선택지였던 겁니다. 현재 홈쇼핑에 집중하는 이유도 그렇고요.”
지난 20여 년간 전화 권유 판매를 영위한 GSI의 모습은 최근 2, 3년 새 크게 변했다. R&Y가 개척한 TV홈쇼핑에 들어가 인바운드 사업을 개시했고, 이를 통한 신규고객 확보로 기존 아웃바운드 통신판매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다. R&Y의 유산인 ‘플라센타100’은 GSI의 사업영역을 화장품에서 미용보조식품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또한 GSI는 ‘플라센타100’의 명성을 화장품으로도 이어오기 위해 플라센타(태반)를 활용한 화장품으로 라인업을 강화했다. 이러한 여러 시도로 인/아웃바운드 고객이 서로 교차되며 시너지를 내게 됐다.
어디 그뿐인가. TFS를 통한 이온(AEON)사업, ‘리치’와 TJI 사업, 2015년부터는 GSI 본사 건물 1~3층을 면세점으로 운영 중이다.
GSI는 이제 아웃바운드 회사를 넘어 우리회사 일본 사업의 플랫폼으로 변신해여러 가능성들을 실어 나른다. 절박함으로 달려 이만큼 왔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일본 시장에서 이방인이고, 많은 우리제품들은 변방에 있다. 화장품과 생활용품들이 격전지로 들어가 성공할 때까지 GSI의 변신과 우리의 절박함은계속될 것이다.